한비자의 '일청법(一聽法)'이란 글을 보면 관악기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나라 선왕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300명이나 되는 합주단을 거느렸는데 ( 대부분의 글에서 우리말로 번역하며 '피리'라고 하였지만 한자로는 '竽'(우)라고 한 것을 보면 '생황'인 듯합니다 ) 워낙 연주단의 수가 많다 보니 별의별 연주자들이 있기 마련이고 '남곽'이란 사람처럼 실력도 없으면서 월급만 받아 가는 엉터리 연주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왕에 이어 즉위한 민왕은 수 백 명의 합주보다는 연주자 개인의 역량이 궁금하여 한 사람씩 독주를 시켜 보았는데 그러자 진짜 실력이 탄로 날까 봐 겁이 나서 도망가는 사람이 속출했다는군요. 저사랑의 대금 수업 시간에도 반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수준의 회원들이 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