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연구소>에서 저에게 보낸 메일 중에
우리음악에 관련된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다산의 《악경》 복원과 고악의 회복
김 세 종 (다산연구소장)
다산의 학문은 참 넓고도 깊다. 인문학 자연과학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학문분야를 넘나들고 있다. 그의 시문과 책 속에는 당쟁시대 권력에 눈멀어 백성들의 곤궁한 살림은 아랑곳하지 않던 시절, 성인의 글을 근본 바탕으로 삼고 현인의 글을 거울삼아 경전을 재해석하고, 사회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진단하며, 해결방책을 열거한 대목에서는 그저 경외감이 들 뿐이다. 하지만 그가 음악에 밝은 음악학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다산은 요·순(堯·舜)시절의 음악에 밝은 음악학자였다
다산은 요·순(堯·舜)시절 음악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밝힌 짤막한 논문 형식의 〈악론(樂論)〉 2편과 고대 악률체계를 구현한 《악서고존(樂書孤存)》 12권을 남겼다. 다산의 음악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하던 요·순시절, 고악(古樂) 즉 《악경(樂經)》을 복원한 것이다. 《악경》은 사람이 항상 쫓아야 할 도리를 가리킨 6경 중의 하나이다. 6경은 공자가 13년을 온 세상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하고, 고향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6예(藝)를 가르치고, 《시경》·《서경》·《예기》를 손질하고, 《악경》을 바로잡고, 《춘추》를 저작하고, 《역경》을 덧붙여 6경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런데 《악경》은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경서를 불태운 분서(焚書) 이후, 학자들을 구덩이에 생매장시킨 갱유(坑儒) 때에 잃어버렸다. 뒷날 후한의 정현(鄭玄, 127~200) 등에 의하여 방대한 주석과 고증 작업으로 그나마 5경(五經)은 회복하였으나, 끝내 《악경》만은 부흥되지 못한 채 옛 경전 속에서 편린(片鱗)으로 밖에 살필 수 없는 경이 되어 버렸다. 다산은 이러한 《악경》의 망실을 지극히 애석하게 여겼다. 요·순시절 덕치를 펼치던 그 중심에 음악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았고, 예악사상으로 점철된 공자·맹자의 본령이 어디에 있는 가를 꿰뚫고 있었다.
다산은 짤막한 〈악론〉 2편에서 “음악의 망실이 성인의 도를 어둡게 하였으며, 3대 성인의 정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성인의 도는 음악이 아니면 행해지지 못하며, 제왕의 정치는 음악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하며, 천지만물의 정(情)도 음악이 아니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3대 이후에 오직 음악만이 완전히 망실하여 백세동안 훌륭한 정치가 없었고, 사해(四海)에 착한 풍속이 없는 것은 모두 음악이 망실되었기 때문일 뿐이다.”고 지극히 애석하게 여기며, 당시 암울하고 혼탁한 사회현상을 짚어냈다.
《악서고존》, 수많은 거짓 악서보다 이 외롭게 전하는 악서가 더 낫다
강진 유배시절에 편찬한 《악서고존(樂書孤存)》 서문에는 음악에 대한 애착과 편찬 당시 병마에 시달린 가슴 뭉클한 사연이 전한다. 알다시피 다산은 1801년 겨울 강진에 유배되어 18여 년을 귀양 살았다. 이중 다산에게서 10년 초당생활은 오늘날 다산학의 토대를 마련한 시기였는데, 《악서고존》 또한 1816년(순조16) 55세 봄, 다산초당에서 완성된다. 《악서고존》 서문에는 “다산초암에 머무를 때에 다리가 붓고, 근육이 땅겨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한 상황에서 고악이 이미 망실하고 선성(先聖)의 도가 어두워졌으니 분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 전한다. 뿐만 아니라, 병상에 누어 스승이 부르면 글씨 잘 쓴 제자 이청(李晴)이 받아 적어가며 책명을 《악서고존》이라 했는데, 이는 “한·당나라 이후 수많은 거짓 악서보다 이 외롭게 전하는 악서가 더 낫다”는 뜻으로, 《악서고존》에 대한 가슴 뭉클한 사연과 함께 그의 자긍심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다산의 《악서고존》은 진나라 이후에 잃어버린 《악경》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당시 송대 성리철학 일변도로 윤색된 공맹의 예악사상을 회복하여 다시 공맹의 학문체계로 되돌아가는 물꼬를 텄다. 다산은 “육경 사서(六經四書)로써 자신의 심신을 수양하고, 일표 이서(一表二書)로써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본(本)과 말(末)을 갖추었다는 자긍심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다산은 《악경》의 복원과 고악의 회복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주도한 정조대왕의 말씀처럼, “지존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공부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 첫째는 고전을 통해 진리를 배우는 일이며, 둘째는 탐구를 통해 문제를 밝히는 일이며, 셋째는 호방하고 힘찬 문장 솜씨로 지혜롭고 빼어난 글을 써낸 이것이야말로 우주 사이의 세 가지 통쾌한 일이다.”고 한 것에 비유될 만하다. 다산이 달 밝은 밤 초당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이치를 탐구하여 찾아낸 고귀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다산의 《악서고존》은 동아시아 음악학자들이며 악률이론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악률이해에 대한 수리적 창의성과 독창적 경전 해석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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