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배우기

8월의 국악인 - 이동백(李東伯)

대금잽이 2024. 8. 2. 16:39

이동백(李東伯)

  • 생몰연대 1866 ~ 1950
  • 출 생 지 충남 서천
  • 전문분야 명창

인물정보

- 1866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도만리에서 출생
- 1878 13세 때 김정근에게 판소리 사사
- 1885 서천에 있는 호리산에 들어가 독공
- 1990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
          김창환, 송만갑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원형극장인 원각사에서 창극 공연
- 1915 경성구파배우조합의 일원으로 소리활동
- 1933 송만갑, 정정렬 등과 함께
          조선성악연구회 조직하여 창극의 정립과
          체계적인 판소리 교육에 힘씀.
- 1939 30일 이틀 동안 경성 부민관에서
          은퇴기념 음악회 개최
- 1950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 칠원리 자택에서 작고

◎출생 및 음악활동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도만리에서 출생,
태어나기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나,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8,9세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나 독서에는 뜻이 없고 가요에만 취미가 있어 결국 글공부는 그만두고 13세 때부터
중고제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김성옥의 아들인 김정근 명창의 문하에서 소리공부를 하였고, 당대 동편제 명창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김세종, 서편제 소리를 하던 이날치에게도 소리를 배웠다. 중고제, 동편제, 서편제 소리를 모두 섭렵한 후, 그것을 밑바탕으로 자기만의 소리를 개발해 즉흥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소리를 선보였다.

◎이동백의 득음 과정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독공을 거쳤는데...
고향의 산 속으로 올라가 혼자 밥을 지어 먹고 산에 제사를 지내며 독공을 이어갔다. 움막에는 소리 책과 대추나무 한 토막뿐이었는데... 귀신을 쫓는다는 대추나무는 잘 때 베개로, 소리할 때는 북채로 썼으며 몇 년을 그렇게 정진한 끝에, 판소리계 제일의 수리성을 얻었다.

◎왕의 사랑을 받아 벼슬까지 받은 명창
이동백은 미성을 타고났고 성량 또한 풍부해 고종의 사랑을 받아
어전에서 소리를 하기도 했으며, 정3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했다. 고종의 아들인 순종도 이동백의 소리를 좋아해 원각사에서 공연을 할 때면 전화통을 귀에 대고 소리를 감상할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 음악계에 남긴 자취
창극은 1900년대 새롭게 성행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원형극장인 원각사가 설립되면서 초기의 창극이 이루어졌다.
이동백은 1900년대 초에 서울로 상경한 뒤, 송만갑 명창과
창극운동을 했으며, 1906년 원각사 폐쇄 이후 광무대, 연흥사 등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설립하여
춘향전, 흥부전, 숙영낭자전, 편시춘, 토끼타령, 옹고집전 등을
지휘하면서 창극의 정립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은퇴 무대
후진들을 위해 은퇴를 결심하고 1939년 3월 29일 30일 이틀 동안 경성 부민관에서 은퇴기념 연주회를 가졌다.
강장원, 강태홍, 조영학, 박초월, 김소희, 등... 제자들이 찬조 출연해 무대를 빛냈으며, 장내 청중들은 감격의 도가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고 한다. 연주회는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전주, 대구, 대전, 평양 등 전국을 돌며 여러 차례 이루어졌는데,
많은 명창들이 이동백의 은퇴공연에 함께 출연하였다.
이후, 후학 양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1950년 자택인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 칠원리에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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