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와 대금

올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려서 큰 피해를 보신 분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였습니다.

갑자기 많은 눈이 내린 어느날 질퍽해진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는 동안 왠지 왼쪽발이 축축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구두를 벗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왼쪽 양말이 푹 젖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디 물이 스며드는 곳이 있나 하고 구두를 살펴보다가 밑바닥이 가로로 길게 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하, 그래서 물이 샜구나' 하면서 이 번엔 오른쪽 구두를 보니 예상과는 달리 전혀 이상이 없이 말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같은 날 한꺼번에 사서 똑같이 신고 다닌 구두가 어찌하여 한 쪽은 깨져서 완전히 두 쪽이 났는데, 어떻게 다른 쪽은 새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구두를 험하게 신는 것도 아니고, 뜀박질을 한 적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구두 밑창이 깨진 것일까.'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이런 저런 추리를 다 해 보았으나, 도저히 답을 알 수가 없겠더군요.

결국은 추리를 포기하고 잊고 지내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혹시 내가 걸음을 이상하게 걷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양발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느끼며 몇 걸음을 더 걸어 보았더니, 역시나 저의 걸음걸이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저는 산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무리하여 오른쪽 무릎을 다친 적이 있고, 그 뒤로 발목을 몇 번 삔 적이 있는데 그때도 모두 오른쪽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걸을 때 오른쪽 다리는 살짝 짚고 왼쪽다리에 힘을 주며 걷는 버릇이 생긴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절름발이가 된 것이지요.

 

구두 이야기는 이쯤 하고 대금으로 넘어갑니다.

대금을 불다 보면 몸과 악기 모두에 흔적이 남게 되지요.

오래 분 대금에는 땀에 절은 손자국이 남게 마련인데 그 모양을 잘 살펴보면 바른 운지법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손에는 대금에 눌린 자국이 생기는데, 가령 손가락 끝에 생기는 지공의 흔적이나 악기와 밀착하여 생기는 굳은살 등을 찾아보면 어떤 방법으로 악기를 쥐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그런가 하면 취구와 맞닿는 아랫입술에는 취구의 자국이 생기므로 그 모양이 비뚤어졌으면 취법이 잘못된 것일 테고, 깊게 생긴다면 대금을 너무 꼭 눌러 불거나 숙여 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대금을 연습하고 나서 유달리 불편하고 아픈 곳이 있다면 역시 자세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금을 연주하는 자세는 평소에 거의 취하지 않는 불편한 자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불편을 많이 느낀다거나 특히 많이 아픈 곳이 있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처음 대금을 배울 때 가능하면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라고 하는 것도 바른 자세와 올바른 취법을 갖추기 위함인데, 아무리 신경을 써도 누구나 조금씩 잘못된 습관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거울을 보거나 선생님과 선배들이 지적해 주어서 고칠 수도 있지만, 평소에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악기를 잘 살펴보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교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유명 스포츠 스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악기를 다루는 것 역시 악기라는 기구를 자신의 몸으로 다루는 것이기에 기본기와 자세가 바르게 잡히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또 잘못된 자세와 습관이 굳어지고 나면 고치기가 매우 어려운 데다 오랜 시간을 교정에 투자해야 하며 연주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연습하는 것이 짜증이 나고 악기를 멀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자세와 취법을 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살펴보는 습관을 길러서 효과적인 연습과 연주가 되게끔 한다면 오래도록 대금을 즐겁게 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사랑국악회 =http://cafe.daum.net/daegumlove

대금동호회-저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