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486

대금을 잘 불 수 있으려면 기초를 충실히 익혀야 합니다

대금을 배우는 과정을 크게 나누면 초급, 중급, 고급으로 가를 수 있을 텐데그 중 초급과정에서는 대금의 역사와 구조, 소리 나는 원리와음계이론, 악보 보는 법, 우리음악의 이해 등 이론적인 수업과 더불어바른 호흡법과 취법, 자세 등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여음정과 박자를 맞추는 방법, 혀치기와 강약 조절 등대금 연주에 있어 밑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신체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대체로 기초과정을 1년~3년은 연마해야 기본기가 잡히는데처음엔 다들 대금을 금방 잘 불 수 있을 줄 알고 오셨다가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조바심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 어서 멋진 노래를 불고 싶어서 자꾸 새로운 곡을 배우길 원하시는데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대금을 배우..

대금 배우기 2025.01.06

대금 수업 일지

82기반지난 시간에 했던 '조각배'와 '늴리리야'를 복습해 보니이제 박자는 거의 맞게 잘 부셨지만간혹 취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대금 소리가 깔끔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조각배'에서 姑과 㑲가 이어지는 가락을 불 때저음 소리가 잘 안 나기도 하고'늴리리야'의 汰潢汰㳞汰~ 부분에서고음을 굵게 부셔서 음색이 탁해지기도 하였는데각각의 음에 꼭 맞게 입김을 조절해야 제대로 소리가 나므로손과 입술에 힘을 빼고 정확하게 부는 연습을 많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악 2반'바람' 2악장의 2중주를 계속 연습하고 있는데아직 박자와 음정이 정확하지 않아서 잘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물론 1/3박이나 1/4박이 계속 이어지는 앞부분은가락이 꽤 복잡하고 운지나 취법도 어려워서어지간히 연습해서는 정확하게 불기 힘드시겠지..

대금 배우기 2025.01.05

도드리만 열심히 분다고 대금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대금을 배우는 분들 중에는 '도드리'에 집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정약대선생의 도드리 10년 적공의 예도 있고선생들마다 도드리를 열심히 익혀야 대금 실력이 는다는 말을 하니무조건 도드리만 자꾸 불면 되는 줄 아시는데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드리를 많이 익히면 좋다는 이유는속도가 너무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으면서음역은 아주 넓어서 대금의 최저음에서 최고음까지 거의 모두 출현하며1/3박과 1/6박 등 우리 음악의 대표적인 박자가 다양하게 나오고여러 가지 장식음과 기교 등의 연주법도 익힐 수 있지만무엇보다도 곡의 느낌을 파악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곡을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그 곡을 완벽히 소화하고 나면 어지간한 곡은 쉽게 불 수 있게 된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여기서 문제가 발생합..

대금 배우기 2025.01.04

대금 수업 일지

87기반연습곡 15번과 16번은 박자가 비슷하여함께 묶어서 연습을 하시면 되는데두 곡 모두 앞에 배운 곡들에 비해 박자가 어렵고南나 林이 자주 나와서 운지와 취법도 까다롭습니다.특히 16번은 음역이 아주 낮아서여러 개의 지공 중 약간이라도 덜 막힌 것이 있거나몸에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소리가 안 나기 때문에충분히 몸을 푼 다음에 입술과 손에 힘을 빼고최대한 부드럽게 불 수 있어야 합니다.    85기반지난 시간에 이어 '홀로아리랑'을 복습해 보았는데이제 꽤 익숙해졌기에 좀 빠르게 불어 보았더니반박자가 나오는 부분에서 갑자기 빨라지는 경향이 있고'혀치기'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좀 더 보완을 해야겠네요.다음 곡은 '엄마야 누나야'인데4 각 밖에 안 되는 짤막한 노래이지만취법의 조절에 집중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

대금 배우기 2025.01.03

1월의 국악인 - 이창배(李昌培)

벽파(碧波) 이창배(李昌培)생몰연대 = 1916 ~ 1983출 생 지  = 서울전문분야 = 명창 인물정보호 벽파(碧波). 서울 출생. 중학을 마친 뒤 조선총독부 측량기사로 일하면서 한편으로 전문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1923년경 원범산에게서 시조와 가사, 경서도잡가를 3년간 배운 후 가사와 경서도민요(京西道民謠)의 명창 최경식(崔景植)에게 가사와 민요를, 선소리산타령의 명창 이명길(李命吉)에게 《선소리산타령》을, 다시 경기잡가의 명창 박춘재(朴春載)에게 경기잡가를 사사하였다.1944년 조선가무단원으로 전국을 순회공연하였고, 1951년 국립국악원 국악사가 되고, 60년부터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선소리산타령》의 보존회를 조직, 이의 보급과 후진양성에 힘써 왔으며, 청구성악학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대금 배우기 20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