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순 여사는 1918년생으로 17세에 혼인하여 평범한 주부로 지내시다가
한국전쟁 때 우연히 시조를 접하시게 되었습니다.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가셨는데 거동도 못하실 정도로 중환을 앓고 난 후
건강을 위해 대신동의 구덕 수원지로 산책을 다니셨는데
그 곳에서 시조를 부르시는 분들을 만나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김태영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시조를 배우게 됩니다.
그 뒤 서울로 돌아오신 다음에는 이병성 선생께 가사를 또 배우고,
이주환 선생께 가곡까지 익혀서 정가 전반을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30대의 늦은 나이에 입문하였으나 타고난 목청이 좋았고
당대의 훌륭한 선생님들을 사사하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여창 정가의 명인으로 활동하시게 되었으며,
나아가 중요무형문화재 30호 여창가곡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으시게 되셨으니
그 분이 바로 김월하 선생님이십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물론 작고하셨지만,
오래전에 제가 서용석 선생님께 대금산조를 배우러 다닐 때
학원 앞에서 종종 뵙고 인사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허름한 옷에 몸빼를 입으시고, 다리 하나가 없는 작은 개를 늘 안고 계셨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을 겁니다.
근검절약하시면서 모은 재산으로 월하문화재단을 설립하시어
가곡을 비롯한 우리음악의 전승과 보급에 많은 힘을 쏟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사랑은 대금 동호회인 만큼 대부분 성인이 된 후에 배우시게 되는데,
뒤늦게 취미로 배우다가 월하 선생님처럼 되지 못한다는 법은 물론 없으나
음악을 배우는 분들이 모두 명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대금이 좋아서 즐기려고 오셨으니 너무 큰 욕심에 조급하여
늦었다고 한탄하시거나 포기하시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시면
누구나 아름다운 대금 가락을 직접 연주해 보는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