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배우기

악보가 있어야 대금을 배울 수 있는가

대금잽이 2009. 7. 25. 10:57

 

 

저사랑국악회 = http://cafe.daum.net/daegumlove

 

 

1985 년에 저는 부산에서 '강백천 류' 대금산조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강백천류의 산조도 악보가 나와 있지만, 당시만 해도 강백천류는 연주하는 사람이 적고 많이 알려져 있지도 않아서, 악보 없이 구음(口音)으로 가르쳤지요.

선생님의 손가락을 보고 따라하며 한 소절씩 배우노라면 답답하기도 하였고, 집에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머리 속으로 가락을 떠 올리며 손가락을 반복해 놀리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휴대용 소형 녹음기조차도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때라 가난한 저는 구입할 엄두를 못 내었고, 다음 시간까지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락을 외어서 가야 했기에 집에 돌아 와서도 먼저 대금을 꺼내 한참을 연습한 뒤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진도도 많이 나갈 수가 없어서 하루에 산조 가락 한, 두 장단을 배우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하루 빨리 대금을 배우고 싶었던 저는 악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그 뒤 서울대학에서 대금을 전공하게 되어 서용석 선생님의 산조를 익힐 때는 드디어 악보를 가지고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 때도 진도는 그리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하루에 서너 장단) 악보가 있으니 잊어 먹을 일이 없고, 선생님의 녹음 테잎이 있어서 수시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요.

하지만, 문제는 가락이 외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구전심수로 배울 때는 10분 정도의 분량이라도 배우는대로 즉시 외었습니다만, 악보를 보고 배우니 1 년이 되도록 악보가 없으면 중간에 자꾸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를 흘렸던가? 이 음을 가늘게 떨었던가, 굵게 떨었던가? 한참 연습하다 보면 엉뚱한 가락을 불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수업을 받는 중에도 눈이 악보로 가 있다보니, 선생님의 호흡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 악보가 없을 때는 선생님의 호흡 하나,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 놓지지 않으려고 집중하며 생생히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는데, 악보가 있으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대금 선생이 되었고, 어느 날 옛 생각이 나서 민요 한, 두 곡을 악보 없이 가르쳐 본 적이 있지요. 그랬더니 배우는 사람 못지 않게 저 역시 답답함을 또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민요도 악보를 만들어 가르치는데, 악보를 하나씩 만들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요즘은 악보 없이 배우는 분들은 없을 것이고,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도 적을 것입니다만, 과연 어느 쪽이 좋은 것일까요? 한 번 쯤 생각해 보시지요.

  

 

저사랑국악회 = http://cafe.daum.net/daegum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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