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성(綠星) 김성진(金星振)
- 생몰연대 = 1916~1996
- 출 생 지 = 서울 종로구
- 전문분야 = 대금 정악
인물정보
김성진은 1916년 12월 30일 서울 종로구 묘동에서 안동 김씨인 김익룡과 김해 김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세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편모슬하에서 교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스승의 권유에 따라 아악부양성소 제4기생으로 입소했다.
그는 여기서 당대 최고의 대금명인 김계선, 아악수장인 유의석, 제1기생인 박창균, 제2기생인 김천룡(인간문화재 김천흥의 친형)의 훈도를 받았다.
문학에도 재능이 있었는데 그가 쓴 동화가 매일신문의 작품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어 10원의 상금을 타기도 했다. 그의 아호는 녹성(錄星), 문학소년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밤하늘의 별들 중에서 밝고 빛나는 별보다는 그 옆에서 희미하게 초록빛을 내던 별이 좋아 스스로 녹성이라고 이름 짓게 된 것이라 한다.
그는 그 이름처럼 늘 겸손의 뜻을 품어 평생을 함께 하였다. 그는 아악부 입소 이래 한 시도 떼어놓지 않았던 대금을 부지런히 연마했다.
1936년 3월 그는 졸업과 동시에 아악부 아악수로 임명되었고 이것이 평생을 대금과 함께 한 그의 필생의 업(業)의 첫출발이 된 셈이다.
1964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의 대금보유자로 지정되었고 1968년 12월 2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의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는 평생토록 산조를 불지 않고 정악만으로 일관했다. 정악분야에서 유일하게 단일악기가 무형문화재 지정종목이 된 것은 ‘대금정악’이 처음이며 그 첫 보유자가 김성진이었다. 대금정악이란 대금으로 연주하는 정악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악은 본디 합주음악이므로 대금독주의 정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악을 대금으로 독주를 하면 나름대로 특유의 멋과 색다른 흥취가 있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일제 강점기, 김계선 등에 의해서 구축되고 바로 김성진에 의해서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금정악의 대표곡으로는 <평조회상>과 <청성자진한잎>을 들 수 있다. <유초신지곡>으로도 불리는 <평조회상>은 그 상영산의 가락을 자유스럽게 풀어서 연주하는 것으로 은은한 가락과 청아한 음색이 일품이다. 아울러 <청성자진한잎>은 흔히 <청성곡>이라고도 불리며, 대금이나 단소로 연주하게 된다. 가곡의 계면조 <이수대엽(二數大葉)>을 변주한 <태평가>를 장2도 높여서 옥타브 위로 올린 후 관악기의 특징적인 음색 및 주법에 맞게 연주하거나 복잡한 장식음을 첨가하거나 부분적으로는 어떤 음들의 길이를 연장하여 변주시킨 곡이 바로 <청성곡>이다. 김성진은 이 곡을 스승인 김계선에게서 배워 더욱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