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날짜가 다가오면서 슬슬 악보를 외우라는 말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곡이건 연습하고 감상할 때는 좋은데, 막상 외우려고 들면 끔찍하지요.
특히 긴 곡이거나 날짜가 촉박할 때는 부담이 많이 됩니다.
그러면, 악보를 보고 하면 편할 텐데 왜 굳이 외워서 연주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게 되면 악보에 얽매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실은 자유로운 연주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거의 다 암보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한 곡이라도 악보를 펴 놓게 되면 눈이 계속 악보로만 가게 되어, 자신의 느낌을 살리면서 머리속으로 그림을 그려 낼 여유가 없지요.
또 한 가지, 학생들이나 특히 취미로 음악을 하는 분들에게 악보를 외우도록 권하는 것은 그만큼 연습을 더 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악보를 외우려면 몇 번이라도 더 불어야 되고 그러다 보면 곡에 대한 해석도 깊어지게 마련이니까요.
물론 취지는 좋으나, 바쁜 직장생활에 쫓겨 없는 시간을 쪼개서 대금 한 번 불어보려고 오시는 분들께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모임에서도 연주회 때가 임박하면 암보문제로 회원들 간에 격론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역시 악보를 외워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전제하에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악보를 쉽고 빠르게 외울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악보를 외우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대략 서너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눈으로 외우는 것입니다.
악보를 보면서 숱하게 연습하다 보면 눈을 감아도 악보가 머리속에 줄줄이 펼쳐지지요.
둘째, 손가락으로 외우는 방법,
역시 연습을 많이 하면 간혹 딴생각을 해도 손가락이 저절로 돌아갑니다.
셋째, 귀로 외우는 방법,
연습을 하는 한편, 음악을 많이 듣고 흥얼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전 곡을 노래로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 외에 딴 방법을 쓰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위에 말씀 드린 것들이 많을 것이며 또 그 중 대부분은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굳이 어느 한 가지를 쓴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다음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적어 보겠습니다.
어떤 곡이든 간에 연주할 곡이 정해지면 우선은 한 곡을 수 십 번 연습해 봅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악보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복잡한 부호를 해석하느라 정신없지만, 차차 여기저기서 동일한 가락과 비슷한 진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연필을 들고 그 부분들을 찾아 표시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부분은 완전히 똑같은 가락이 반복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약간 변형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곡의 얼개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이 것이 바로 '분석'의 시작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다 찾아내면 형광펜을 가지고 악보를 칠해 봅니다.
그러면 일목요연하게 곡의 짜임새가 드러나고, 전체를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게 됩니다.
( 곡을 분석하려면 더 깊이 있게 진행해야겠지만 여기서는 그만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그 덩어리들 중에 외우기 쉬운 부분부터 하나씩 외어 나갑니다.
이 때 더 쉽게 악보를 외우려면 무조건 악보를 덮어야 합니다.
악보를 펴 놓고 불면 자꾸 악보에 의존하게 되어 단시간에 외우기가 어려우므로 우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봅니다. 그러고 나서는 막힌 부분만 찾아서 외우고 다시 처음부터 도전합니다.
이렇게 집중하면서 며칠만 하다 보면 의외로 쉽게 악보를 외울 수가 있으며, 잘 안 외워지는 부분은 따로 분석하여, 어느 가락이 애를 먹이는지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그 가락만 집중적으로 수 백번 연습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대충 악보를 암기하고 나면 다음에는 머리속으로 악보나 가락을 그리면서 연습합니다.
전체와 부분의 짜임을 생각하면서 쭉 연주하되, 중간중간 체크 포인트를 설정합니다.
연주할 때는 그 몇 개의 중요 포인트와 흐름만을 생각하며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나가면 되지요.
( 아무래도 10 여 분씩 되는 긴 곡을 음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고 집중하면서 연주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이렇게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다음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곡에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싣고 함께 연주하는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조절해 가면서 연주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물론 제가 말씀드린 방법만 꼭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악보를 어찌 외울까 막막하신 분들은 참고 삼아 한 번 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