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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국악인 - 정응민

대금잽이 2024. 10. 3. 14:01

송계(松溪) 정응민(鄭應珉)

  • 생몰연대 1894 ~ 1961
  • 출생지  전남 보성
  • 전문분야 판소리

 

프로필

- 1896 전남 나주 출생
- 1903 큰 아버지 정재근을 따라 서울로 상경
- 1921 고향으로 낙향하다
- 1961 별세
- 1996 탄신 100주년 기념 재조명 학술대회
            

상세정보

1894년에 태어나 1961년 작고할 때까지 이 땅에 판소리를 바르게 지켜냈던 명창이다. 본관은 하동, 호는 송계(松溪)이다.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기예능 보유자였던 정권진의 아버지이다. 큰아버지이며 서편제의 비조 박유전의 제자인 정재근과 김세종의 제자인 김찬업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0대에 서울에 올라와 협률사 창극공연활동을 하다가 고향인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에 돌아와 은거하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정응민은 서울에서 활동할 때에는 흥선대원군의 운현궁 사랑채 노안당에 드나든 판소리 명창 중 마지막 소리꾼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목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목을 얻어 대명창이 되었다.

성대가 굳고 음향이 크지 못하여 극장공연에서는 크게 공연효과를 보지 못하였지만, 실내공연에서는 대단히 기량이 발휘되어 청중들을 경탄하게 하였다. 정교한 부침새와 사랑방을 사로잡는 목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부친인 정재근의 소리를 이어받아 한 때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5회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였던 정권진에게 전승함으로써 오늘날 보성소리를 지켜낸 음악사적 외의 중요성도 간직한 인물인 셈이다.

특히 그의 소리는 성음의 높낮이가 분명하고 명확히 구분하여 들을 수 있으며, 또 소리를 낼 때에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고 끝을 낮추어 끊는 것이다.

한 때 그의 소리를 일컫기를 미려(美麗)하고 맑으면서 한이 담겨 처음 소리를 낼 때에는 연삽(軟颯)하고 소리를 끊을 때에는 차마 끊지 못하는 것 같이 끌어서 떼는데 장기를 보였다.

정재근을 통하여 박유전의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이어받았고, 김찬업을 통하여 김세종의 《춘향가》를 이어받아 전통적인 특성이 강한 정응민제 판소리 양식을 개발하여 많은 제자에게 전하였다.

따라서 동편제와 서편제의 음악적 배경을 아울렀던 송계 정응민의 보성소리는 박유전의 강산제, 김세종의 동편소리, 이동백의 중고제를 융합하여 보성이라는 지역 토양 위에서 완성된 판소리 유파이다.

그의 문하에서 김연수, 박춘성, 정권진, 김준섭, 장영찬,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안향련 등 많은 명창이 나왔다.
그의 소리제는 정권진,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을 통하여 1970년대 이후 판소리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는 판소리가 비속(卑俗)한 데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였고 기품 있는 예술로 승화시키는데 노력하였으며, 고도(高度)의 예술음악으로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정응민이 제자들을 교육 시키면서 버려야 할 네 가지를 강조했는데 노랑목(통속적으로 기교를 많이 내는 소리)을 쓰지 말것, 함성을 쓰지 말것, 전성, 즉 발발성을 쓰지 말것, 비성을 쓰지 말 것 등이다.

2002년 보성 영천리 도강마을에 정응민 생가 복원과 예적비, 북바위 등을 조성해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자료출처 : 황미연 "우리의 소리, 세계의 소리 판소리"(유네스코전북연맹 2002)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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