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배우기

바다와 같은 음악<여민락>

대금잽이 2024. 8. 15. 17:15

흔히 '여민락'을 가리켜 '바다와 같은 음악'이라고들 합니다.

'여민락'은 세종 27년(1445)에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지은 '용비어천가'를 노래 부르던 곡으로 현재 '여민락', '여민락 만', '여민락 영', '해령'의 4 가지가 전하는데, 이 중 '만, 영, 해령'은 당악률에 의한 관악곡이며, 보통 <여민락>이라고 하면 관현합주로 연주되는 <여민락>을 말하지요.

그런데, 왜 여민락을 바다와 같은 곡이라고들 할까요, 그 이유 중 첫째는 그 덩치일 것입니다.
수 십 명이 웅장하게 연주하는 1시간 30분이 넘는 대곡 - 여민락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 어마어마한 길이에 질려 버립니다. 듣고만 있어도 힘들 것 같은 그 곡을 대금으로 불어 볼라치면 1장을 마치기도 전에 벌써 탈진해서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습니다. 더구나 모두 외워서 연주를 해야 하니 웬만한 사람들은 아예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지요.

하지만 여민락을 막상 들어 보면 시디 한 장에 들어가지도 않는 그 긴 곡이 어느샌가 편안하게 지나가 버립니다. 그냥 들어도 좋지만 악보를 펴 놓고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음악에 빠져 들게 되지요.
부산시립 국악관현악단의 유경조 악장님은 국립국악원 재직 시 그 힘든 여민락 전바탕을 3 번째 연주하고 나서 여민락이 진정으로 훌륭한 음악이라는 것을 느끼셨다고 하더군요.

1분 25박의 아주 느린 속도로 흐르던 음악은 후반부에 이르러 45박으로 빨라지면서 장단도 절반인 10박으로 줄어드는 까닭에, 모두 7장으로 이루어진 여민락은 1, 2, 3 장을 하면 거의 다 끝난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3 장 여음 중 11번째 각을 가리켜 '진퍼리'라고 불렀다는군요. 왕십리 근처 어느 지명이라는 '진퍼리'에 이르면 서울에 거의 다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민락을 들어 본 사람들은 그 웅장하고 원만한 흐름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큰 바다를 떠 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품을 듯한 바다, 그에 비하면 세상의 자잘한 시비 따위는 티끌처럼 하챦은 것이 되고 말지요.

하지만 저는 여민락을 '장강'과 같은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수 천 년 세월을 도도히 흐르는 큰 강물처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음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다는 고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 큰 바람과 파도가 일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사나워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민락에서는 그런 것은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강물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민락을 불고 있노라면, 소용돌이치면서 굽이 굽이 흐르는 계곡의 물이 아니라, 넓디넓은 평야에 완만한 속도로 천천히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을 연상하게 되더군요.

삼국지의 도입부를 보면 젊은 유비가 황하의 거대한 흐름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아직 황하를 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여민락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들 힘들어하는 요즘, 주말쯤 모두들 모여서 여민락이나 한 바탕씩 불어 보시면 어떨지요?

 

저사랑국악회 =http://cafe.daum.net/daegum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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